프랑스 정부가 내놓은 청년 실업정책, 최초고용계약법(CPE)에 반대하는 학생·노동자들의 시위가 격화되고 있다.
기업주가 26세 미만의 직원에 대해 고용후 최초 2년간 자유롭게 해고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 이번 최초고용계약법의 핵심. 격렬한 학생 시위로 대학교는 물론 일부 고등학교까지 휴업에 들어갔고,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도 정부가 고용 불안정을 유발하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최초고용계약법, 우파 정권의 신자유주의 수용
이번에 프랑스 정권이 들고나온 최초고용계약법은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추진하는 방식과 일치한다. 중도 우파 정권인 드 빌팽의 신자유주의 적용 시도가 프랑스 시민사회의 저항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 저항의 세기는 '프랑스였기때문에' 한국 보다 더욱 격렬하게 나타났다.
프랑스 정부도 할 말은 있다. 현재 프랑스의 25세 미만 청년 실업률은 24%. 고실업률의 극복방안으로 최초고용계약법이 제시된 것이다. 정부는 강력한 노동유연성을 부여하면 노동이 창출돼 실업을 극복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물론 빌팽의 정치적 계산도 있다. 차기 우파 대통령 후보감으로 꼽히고 있는 드 빌팽은 현재 내무장관인 사르코지와 라이벌 관계에 있다. 이번에 고용법을 강하게 밀어부치고 있는 이유도 '혹여 여기서 밀리면 사르코지에게 패할 수 있다'는 불안이 내포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는 지난 1995년 지금의 드 빌팽 정권과 성격이 비슷한 중도 우파의 알랭 쥐페 총리의 연금개혁과 비슷하다. 당시 쥐페는 연금개혁을 밀어부치다 한달 가까운 노조 파업에 굴복해 결국 97년 총선에서 사회당에게 정권을 내줘야 했다.
쥐페도 신자유주의를 도입하려 했었고 그 공격 대상은 공기업 노동자들의 연금체계였다. 연금을 하향조정하면서 국가 부담을 줄여보겠다는 의도였다. 결국 그 의도는 실패했다.
이번 빌팽의 시도도 쥐페 정권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빌팽은 고용법을 철회할 의사가 없다는 입장을 고집하고 있지만, 프랑스의 대표적 일간지인 [르몽드] 마저 철회 또는 유보를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더구나 내년 대선을 앞둔 빌팽이 마지막까지 고집을 부리기는 쉽지 않다.
중간계층들의 이유 있는 반란
국내 언론에서는 이번 시위 사태를 두고 과거 1968년 프랑스 대혁명에 비유하곤 하지만, "1995년 대파업에 더 가깝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라고 홍세화 한겨레 시민편집위원은 말한다.
이번 사태는 95년 당시처럼 신자유주의 수용에 대한 학생, 노동자 등의 반대로 시작됐기 때문이다. 68년 혁명에서 젊은 세대의 시위를 이끈 것은 일자리나 고용 불안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에 대한 열망이었다.
그러나 지금 젊은층이 보여주고 있는 시위는 사회로부터 배제될지도 모른다는 우려와 불안이 맞물려있다. 이는 작년 11월 프랑스에서 발생했던 이주노동자들의 대규모 폭력사태와도 비슷한 현상이다.
당시 사태는 이주노동자들의 사회적 배제에 대한 절망적인 불안이 표출된 것이었다면, 이번은 중간 계층인 학생, 노동자 등이 신자유주의 속 경쟁과 효율의 논리 속에서 혹여 자신들도 배제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 작용한 것이기 때문이다.
홍 위원은 "프랑스의 대규모 시위가 오래 지속될 수 있는 이유는 단 하나, 시민사회에 전반적으로 깔린 높은 의식 수준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만큼 시민의식의 성숙 정도가 한국과는 차이를 보인다는 것이다. 이번 대규모 시위를 두고 벌인 여론조사에서 약 60% 이상이 최초고용법 철회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이미 법안은 상원을 통과해 4월초 실제 적용을 앞두고 있는데도 말이다.
홍 위원은 시민과 언론에 이러한 높은 의식 수준이 자리잡히게 된 데에는 프랑스의 근대 공화국 원칙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프랑스 대혁명 후 나타난 근대 공화국 원칙은 '사회정의가 질서에 우선한다'는 것이다.
즉 이번 프랑스 정부의 최초고용계약법은 '사회정의'가 아니라는 것이다. 사회정의를 위해서라면 질서도 파괴될 수 있다는 것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사회정의가 있다면 저절로 질서는 파괴되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프랑스 언론 vs 한국 언론
프랑스 언론들이 파업이나 집회·시위를 바라보는 시각도 한국과는 너무나 다르다. 만일 프랑스 언론이 우리나라 수구 언론들처럼 '경찰과의 충돌', '파업으로 교통마비', '시민불편' 등을 썼다가는 철저히 국민들에게 외면을 받는다.
1995년 공기업 노동자들의 파업은 프랑스 전역에서 3주동안 진행됐다. 대중교통이 전부 마비 상태였다. 때문에 출퇴근 거리가 20분이면 될 것이 2~3시간 걸렸다. 시민들의 불편이 최고조에 달했을텐데도 어떤 언론도 노동자를 매도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사회정의가 질서보다 우선이라는 시민들의 의식이 바탕이 됐고, 자신도 곧 노동자라는 인식이 만들어 낸 결과였다. 교통이 마비되어 무척 불편하지만 나도 노동자이기 때문에 그들의 파업을 지지하고 연대한다고 시민들은 말한다.
한국의 수구 언론들처럼 '시민의 발을 볼모로 삼아 이기심을 내세웠다'느니 하는 보도가 나오면, '노동자 의식이 없다'고 취급돼 외면당한다.
홍세화 위원은 "우리나라 조중동에게 노동자 의식이 없고, 상품권과 현금 등을 이용해 국민들에게 신문을 구독시킨 것이 한국 사회에 먹혀들었던 것은 그만큼 한국 사회의 시민의식이 성숙되지 못했기 때문"이라면서 "조중동이 노동자에 대한 정체성이 탄탄하지 못하니 자본과 가진 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꼬집었다.
또 홍 위원은 "프랑스에서는 기업주가 26세 미만의 직원에 대해 고용후 최초 2년간 자유롭게 해고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에 너나할것 없이 아우성인데, 한국은 모든 노동자를 비정규직으로 만들겠다고 하고 있지만 그저 노동자들의 힘든 싸움으로 비화되고 있다"는 모순점도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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